HR news헌재 "교섭창구 단일화, 침해보다 실익 커 '합헌'"...확장된 2012년도 결정

이민호
2024-07-01

재판관 4:5로 합헌... 반대의견 "소수노조 권리 침해 최소화하는 보완책 부족"

노동조합법상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창구단일화 제도)가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12년만에 또다시 나왔다. 헌재는 창구단일화 제도는 교섭 절차를 일원화해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교섭 체계를 구축하는 제도로 그 목적과 수단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또 창구단일화의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제도를 함께 두고 있어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봤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법재판소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전국화학식품섬유산업노동조합(화섬식품노조) 등이 제기한 노동조합법 제29조 제2항 등에 대한 헌법소원 청구를 기각했다. 헌법재판관 9명 중 찬성 의견은 5명, 반대 의견은 4명으로 위헌 정족수인 6명을 넘지 못했다.


"창구 단일화 제도, 소수노조 권리 침해 과도하지 않아...판단 이유 보니"

심판 대상 조항은 창구 단일화 제도를 규정한 노동조합법 조항이다(제29조 제2항, 제29조의2 제1항 내지 제3항, 제29조의5). 창구 단일화 제도는 한 사업장에 여러 개의 노동조합이 있을 경우 교섭 요구 사실 공고, 교섭 대표 노동조합 결정 절차 등을 거쳐 교섭 창구를 일원화하는 것을 뜻한다. 노조 간 교섭 대표 노동조합을 자율적으로 결정하지 못하면 조합원 수가 가장 많은 다수 노조가 교섭 대표 노동조합이 된다. 이때 사용자는 자율적으로 소수 노조와도 개별 교섭할지 정할 수 있다.

헌법소원 청구인 측은 창구 단일화 제도가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창구 단일화 제도가 노동 기본권을 제한하는 수준을 넘어 노동3권을 박탈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또 헌법상 기본권인 단체교섭권의 질적 차이가 조합원 수에 따라 결정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단체교섭 상대방이자 의무자인 사용자가 단체교섭의 행사 방식과 대상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형평 원칙에 반한다고도 주장했다.

창구 단일화 제도는 노조를 무력화시키는 방안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소수 노조나 신생 노조는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이 완전히 박탈돼 노조 존립과 활동 기반 자체가 무너지게 된다. 그러나 현재는 창구 단일화 제도는 복수 노조와 사용자 간 교섭 절차를 일원화해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교섭 체계를 구축하고 조합원들의 근로조건을 통일한다는 점에서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노동조합법은 개별 교섭 조항, 교섭 단위 분리 조항, 공정 대표 의무 조항 등 교섭 창구 단일화를 일률적으로 강제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보완하는 제도를 두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도 충족했다"며 "창구 단일화 제도로 얻게 되는 공익은 큰 반면 교섭 대표 노동조합이 아닌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은 교섭 대표 노동조합이 그 지위를 유지하는 동안 한정적으로 제한돼 법익의 균형성도 갖췄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소수 노조가 자체적으로 파업에 나설 수 없어 단체행동권을 침해받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헌재는 "교섭 대표 노동조합이 쟁의 행위를 주도하도록 하는 것은 교섭 절차를 일원화해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교섭 체계를 구축하고 근로조건을 통일하고자 하는 목적에 부합하는 적합한 수단"이라며 "교섭 대표 노동조합이 아닌 노조도 쟁의 행위 찬반 투표 참여를 통해 쟁의 행위에 개입할 수 있어 침해의 최소성과 법익의 균형성도 충족한다"고 판단했다.


반대 의견 "보완 제도, 소수 노조 권리 보장 역부족"

다만 4명의 재판관은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창구 단일화 절차의 목적이 정당하고 수단이 적합하더라도 소수 노조의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이유다. 즉 다수 의견에서 인정하는 침해 최소성 요건을 충족하는 개별 교섭, 교섭 단위 분리, 공정 대표 의무만으로 소수 노조의 권리를 보장할 수 없다는 취지다.

반대 의견은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 하에서 독자적인 단체교섭권 행사가 금지되는 소수 노조의 단체교섭권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소수 노조의 절차적 참여권이 보장돼야 한다"며 "노동조합법은 이를 위해 공정 대표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만 정보 제공이나 단순 의견 수렴 등은 요식적인 것에 그칠 수 있어 소수 노조의 의사를 실질적으로 반영시키기에는 부족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교섭 대표 노동조합이 도출한 단체협약 잠정 합의안 찬반 투표에는 소수 노조 조합원도 참여할 수 있지만 잠정 합의안 확정 절차에는 소수 노조가 참여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며 "단체교섭과 단체협약 체결 과정에서 소수 노조가 자신의 의사를 실질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이나 수단에 관한 규정도 없다"고 덧붙였다.

반대 의견은 "자율적 개별 교섭은 사용자가 동의한 경우에만 가능해 창구 단일화 제도의 합헌성을 담보하기에는 취약하다"며 "교섭 단위 분리 제도는 인정 기준이 비교적 엄격하고 노동위원회 결정에 의해서만 가능해 창구 단일화 제도의 합헌성을 담보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더 확장된 2012년 합헌 결정...금속노조 "교섭권 박탈 현실 외면"

앞서 2012년 헌법재판소는 이번 결정과 같은 취지로 창구 단일화 제도가 합헌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이후 12년 만에 선고되는 이번 헌법소원 사건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다만 당시에는 교섭 대표 노동조합과만 교섭하도록 규정하는 제29조의2 제1항에 대해서만 합헌 판단이 나왔다. 이번 사건에서는 이를 포함해 교섭 대표 노동조합 선정 방법, 소수 노조의 쟁의 행위 금지 등을 규정하는 조항도 함께 심판대에 올랐다.

이날 선고는 3개 사건이 병합돼 나온 것이다. 첫 사건은 금속노조 다이셀지회가 제기한 헌법소원이다. 다이셀지회는 단일 노조로 회사와 교섭에 나섰지만 사용자가 교섭을 해태하던 중 교섭 일자를 하루 앞두고 기업 노조가 신설됐다. 기업 노조가 설립되자 일사천리로 창구 단일화 절차가 진행됐고 결국 다이셀지회는 조합원 19명 차이로 교섭권을 박탈당했다.

두 번째 사건인 화섬식품노조 신대한정유산업지회 사례도 다르지 않다. 신대한정유산업지회도 단일 노조로 교섭에 나섰다가 본교섭을 앞두고 기업 노조가 신설됐다. 사용자는 다시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하면서 본교섭을 거부했고 지회는 다시 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쳐야 했다. 지회는 결국 18명 차이로 교섭 대표 노조 지위를 얻지 못했다. 5개월간 14차례 교섭을 진행하면서 83개 조항에 대해 합의한 것이 모두 물거품이 된 것이다.

마지막 사건은 금속노조가 제기한 건이다. 콘티넨탈오토모티브일렉트로닉스, 삼성물산, 한화정밀기계 등은 금속노조가 교섭 대표 노동조합이 아니라는 이유로 단체교섭을 이행하지 않고 있어 금속노조는 서울지방법원에 단체교섭 이행 청구 소송을 냈다. 이어 재판부에 창구 단일화 조항 위헌 법률 심판 제청 신청을 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기각했고 헌법소원을 제기하게 된 것이다.

금속노조는 이날 헌재 결정에 대해 "현행 창구 단일화 제도는 헌법상 기본권인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소수 노조로부터 일정 기간 완전히 박탈하는 제도로 위헌이 명백하다"며 "합헌 결정은 헌법재판소 스스로 헌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꼴이라며 즉각 비판했다.

(출처: 노동법률, 2024.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