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R news쏟아지는 괴롭힘 신고…조사, 어떻게 어디까지 해야하나

2024-05-20

2차가해 우려해 신고인이 조사 원치 않더라도 섣불리 조사 중단해선 안돼 

신고사실 뿐만 아니라 조사중 인지된 사실 있다면 사용자에 조사의무 발생

특히 성적 언동이 포함된 사안이라면 괴롭힘 이전에 남녀고용평등법이 우선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폭증하고 있다. 2019년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제도가 도입된 이후 사건 수는 매년 증가하여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신고 건만 해도 2023년에만 1만 건을 돌파했다. 사업장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하여 종결한 사건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근로기준법은 사용자에게 조사의무를 부과하면서도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막상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 조사를 하려고 하면 어떤 범위에서 얼마나 깊이 조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갈팡질팡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실무상 경험을 토대로 사용자가 자체 내부조사를 실시함에 있어서 고려할 필요가 있는 쟁점들을 짚어 보고자 한다.


피해자가 조사를 원하지 않는다면?

회사가 직장 내 괴롭힘 조사를 하려고 하면 피해자가 2차 가해 등을 우려하여 조사에 반대 의사를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회사는 예상되는 피해자의 고충 등 요소를 고려해 조사를 개시하지 않거나 중단하곤 한다. 그러나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은 피해자가 조사에 반대한다고 해서 사용자의 조사의무를 면제하고 있지는 않다(단지 조사 절차 및 그 결과에 따른 조치를 취함에 있어서 피해 근로자의 의사를 반영할 것을 주문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회사로서는 섣불리 조사를 포기하거나 중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즉, 회사는 피해자가 설령 조사에 대해 탐탁지 않은 의사를 표명하더라도 조사를 계속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다만 회사가 조사 방법 및 절차 등을 구성할 때에는 2차 피해 등 피해자의 우려사항을 불식시키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신고사실’만 조사하면 될까?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접수하고 조사를 하다 보면 당사자로부터 많은 자료를 제출받게 된다. 그런데 자료들 중에는 ‘신고사실’로 특정되지 않았으나 별도의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될 수 있는 사실들이 존재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많은 경우 회사는 이를 ‘신고대상으로 특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사 또는 판단 대상에서 제외하곤 한다. 그러나 사용자로서는 항상 조사의무가 ‘신고’뿐 아니라 ‘인지’로 인해서도 촉발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조사 과정에서 제출된 자료를 통해 ‘인지’된 사실이라면 일단 조사의무가 발생한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 역시 조사·판단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또 한 가지 유사한 문제로 ‘성적 언동’이 문제된 괴롭힘을 신고자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만 신고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성적 언동이 내포된 사안이라면 ‘직장 내 괴롭힘’ 이전에 일단 남녀고용평등법이 우선적으로 적용된다고 보고 이를 전제로 한 조사 및 판단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적합하다(고용노동부.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 매뉴얼, 2023.4., 112면). 그럼에도 상당 수 사업장에서는 신고인의 ‘신고취지’만을 좇아 ‘직장 내 괴롭힘’의 조사·판단 절차만을 진행하곤 하는데, 이는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제2항은 근로기준법 제76조의3 제2항과 마찬가지로 직장 내 성희롱 신고를 받은 경우뿐 아니라 사용자가 성희롱을 ‘인지’한 경우에도 지체 없이 조사할 의무를 사용자에게 부과하고 있다.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조사를 실시했다는 점에 안주하여 성희롱 관점에 입각한 조사를 실시하지 않는다면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조사대상자를 임의로 지정하거나 제외해도 될까?

근로기준법은 사용자의 조사권을 별도로 제한하지 않고 있으므로 객관적인 사실 확인을 위해 필요한 범위 내에서 조사를 실시할 수 있는 넓은 재량권을 갖는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용자는 조사대상을 임의로 지정하거나 제외해도 되는 것일까?

근로기준법 제76조의3 제2항은 이에 대해 ‘당사자 등’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고인, 피해자, 가해자뿐 아니라 신고사실의 확인에 객관적 필요성이 인정되는 사람은 일단 모두 조사대상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물론 피해자 의사, 대상자 개인의 사정, 사용자의 업무상 필요 등에 따라 일부 대상자의 조사가 어려울 수도 있다. 다만, 이러한 경우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며, 주요한 당사자는 일정을 조정해서라도 조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또한,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에는 조사의 객관성과 신뢰성 유지를 위해 어떠한 사유에서 대상에서 제외되었는지를 조사보고서에 기록해 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한편, 고용노동부 업무 매뉴얼은 피해자가 행위자의 사과, 재발 방지 약속 등 당사자 간 ‘합의’를 원하는 경우에는 피해자 및 피해자가 추천하는 참고인만을 대상으로 ‘약식조사’를 통해 피해사실을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77면). 그런데 이러한 약식조사는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이 규정하고 있는 조사의무의 범위를 법적 근거 없이 생략하게 하는 문제가 있고, 자칫 약식조사 결과로 인해 행위자에 부당한 ‘낙인’을 가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가급적이면 조사대상을 제한하지 않는 정식조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객관적 증거는 없고 당사자 진술이 엇갈린다면?

자체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 조사를 실시하는 회사들의 가장 큰 고민은 객관적인 증거는 없고, 당사자의 진술은 엇갈리는 경우일 것이다. 세간에서는 이런 경우 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7두74702 판결을 통해 선언된 소위 ‘성인지 감수성 원칙’ 때문에 ‘피해자 진술의 우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받아들이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 2024. 1. 4. 선고 2023도13081 판결이 확인해 주듯, 성인지 감수성 원칙이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무제한으로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일단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하게 되면 사용자는 가해자에게 징계처분을 해야 하는데, 징계 정당성에 관한 입증책임은 모두 사용자가 부담한다. 따라서 사용자로서는 향후 쟁송을 고려하더라도 무작정 피해자 주장을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보고 피해자 주장이 믿을 만한 것인지(신빙성)를 판단해야 할까? 최근 하급심 판례를 보면 법원은 대체로 △진술자의 진술이 얼마나 합리성·구체성·일관성을 띄고 있는지 △진술자의 진술과 부합하는 목격자 진술이나 객관적 증거가 존재하는지 △진술자가 허위 진술을 할 만한 동기가 있는지 △진술자의 진술이 간섭이나 유도됨이 없이 진정한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이뤄진 것인지 등을 살피는 방법으로 진술의 신빙성을 가늠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 피해자 진술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더라도, 피해자 진술대로 사실 인정을 하는 것은 여전히 성급할 수 있다. 피해자 진술이 충분히 구체적이거나 상세하지 못할 수도 있고, 가해자 측 진술도 피해자 진술만큼이나 신빙성이 높아서 피해자 진술을 일방적인 사실로 인정하기가 곤란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결국 사용자가 피해자 진술을 사실로써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확인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피해자 진술을 사실 그대로 인정할 만한 ‘고도의 개연성(highly likelihood)’을 확인해야만 한다(대법원 2021. 3. 25. 선고 2020다281367 판결). 달리 말하면, 조사자의 심증이 이러한 ‘고도의 개연성’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설령 피해자 측 진술이 어느 정도 믿을 만하다고 여겼더라도, 피해자 진술을 사실로 인정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한편, 과거 자문 경험을 돌이켜 보면, 회사가 직장 내 괴롭힘 조사를 실시하면서 이러한 ‘고도의 개연성’을 확인하는 과정이 생략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회식 중에 욕설을 들었다는 신고사건을 예로 들어 보자. 피해자는 욕설을 들었다고 하고, 행위자는 그런 적 없다고 진술한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이 단계에서 피해자와 행위자의 진술을 저울질하여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이런 경우 조사자의 심증이 실제 ‘고도의 개연성’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스러운 경우가 많다. 성급하게 결론을 내릴 것이 아니라, 조사자가 회식 장소의 현장 사진과 근무자 진술을 확보하고, 참석자 인원, 착석 위치 및 가청거리를 재현해 보고, 당사자 주량 및 영수증 확인을 통해 주취 정도를 파악하는 등 당시 정황을 파악하기 위한 일련의 추가조사를 실시한다면 어떨까?

설령 직접적인 물증을 확보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조사자가 ‘고도의 개연성’에 이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단서는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출처: 한국경제, 2024.05.14.)